An Absence

 

프로젝트 기간 : 2006년~ 2016년

 

우리나라에서 모텔은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모텔의 어원지인 미국에서는 자동차 여행자용 숙소였던 모텔은 우리나라에 와서 호텔보다 작은 규모의 일반 숙박업소를 가리키는 말로 정착했고, 기존의 여관을 대체하며 널리 퍼져나가 주요 관광지는 물론 도시의 번화가에서 농촌 한복판까지 모텔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내가 모텔에 주목한 것은 우리나라 모텔이 갖고 있는 묘한 이중성 때문이었다.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공중위생관리법의  규제를 받는 일반숙박시설인 모텔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리를 받는 관광호텔과 다른 점은 단순히 규모나 시설 차원만은 아니다. 모텔이라는 공간의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이미지는 관광호텔과 달리 ‘대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텔은 곧 ‘러브호텔’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어쩐지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대실(貸室) 공간. 일정한 돈을 주고 일정한 시간을 빌려 쓰는 이 공간은 완벽한 익명의 공간이다. 

’1박‘이라는 개념보다는 단 몇 시간을 빌려 쓰기 위해 찾아가는 이 공간은 숙박 시설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연애 시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익명의 사람들이 열정적인 연애를 위해 찾아왔다 떠나는 인스턴트 공간.

 

나는 그 공간에 남겨진 흔적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 즉 ‘부재’를 보았다.

 

한정적인 시간이 흐른 뒤 익명의 누군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부재의 흔적들, 그 흔적들은 또 언제나 재빨리 치워지고 지워진다.

그 공간의 흔적에서 나는 청춘 시절 모든 열정을 바친 뒤에 나이가 들면서 여지없이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쓸쓸한 모습을 보았고,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자들의 재빨리 치워진 책상을 보았다.

 

누군가 떠난 뒤에 남겨진 여러 가지 ‘부재’의 흔적 속에서 미처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아련한 잔재가 나를 모텔로 이끌어 셔터를 누르게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06년에 시작해 2016년까지 지속되었다.

초기에는 모텔방을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누군가 ‘빌려 쓰다’ 나간 방을 치워지기 전에 재빨리 찾아내, 재빨리 셔터를 눌러야 했다.

기록의 순간조차 한정된 시간을 허락받고 잠시 ‘빌려’ 쓰는 시간이 된 셈이다. 모텔 주인과 관리인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프로젝트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 사회에서 모텔의 용도와 이미지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동호회나 과제, 취미생활 등의 모임을 위해 모텔을 빌려 쓰는 일이 잦아졌다.

스마트폰 앱이 활성화되면서 모텔 예약은 보다 쉬워졌고, 대실은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정당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모텔이라는 공간이 사회 전면으로 한발짝 나오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음지에 있던 것들이 양지로 나온 것과도 같다. B급 예술이 당당히 하나의 장르가 되고, 인디 문화가 대중문화로 자리를 잡고,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것처럼, 은밀하게 숨겨진 ‘대실’공간은 새롭게 바뀐 사회 현상과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된 것이다.

 

나는 ‘부재’ 프로젝트를 통해, 부재하는 흔적의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인식의 변화와 사회적 현상을 사진적 관점에서 기록하려 했다.

흔적은 늘 어지러웠고, 마구잡이로 어지럽혀 있었다.

 

존재하였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분명히 있었던 시간이지만 없었던(또는 없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시간을 품은 대실공간이란 결코 정돈된 공간일 수 없는 법이니까.

그 공간의 흔적에서 ‘부재’라는 개념을 찾아 헤맨 나의 기록물이 2000년대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