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comment Series (2007 ~ 2020)

 

21세기의 사진은 기계적인 숙명으로 인해 순간적이거나 짧은 시간만을 노출하고,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렌즈를 통하고,

이미지 센서를 통해 빛이라는 파장의 신호는 0과 1의 유의미한 반복들로 이루어진 이진화를 거치고,

그러한 과정들은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변환되고 저장된다.

 

수잔 손택은 ‘On Photography’에서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은 순간의 빛을 통해 시간에 담아내기 위한 숙명을 가지고 있으며,

사진에 이미지는 과거가 되고,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부재를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기억하지 못했거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찰나의 순간들에 대해서도

사진은 충실하게 우리의 인지능력 부족함과 기억의 왜곡을 보완해 주는 도구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사진은 시간의 침식하면서 변형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사진은 벗어나게 되며, 아우라와 푼크툼과 같은 사진만의 예술로써의 영역을 갖게 되었다.

 

 

No Comment시리즈는 ‘사진이 시간의 침식을 통해 예술로써의 영역에 발을 디덨다면 시간의 퇴적은 사진에게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사람에게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때론 빠르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하며, 멈춰 있기도 하다.

때문에 No Comment시리즈에서의 시간은 상대적이다. 정확한 노출을 위해서 시간을 계산하거나,

노출계를 사용하지 않고, 몇 번의 시행착오로부터 적절한 노출을 찾는다.

그렇게 찾은 노출 시간을 기억해서 엇비슷한 시간 동안 카메라의 셔터를 열고, 노출을 할 뿐이다.

 

사진에서의 시간은 박제되며 조작되지 않는 한 명백하게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담는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인지하거나 기억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몇 가지의 특징을 통한 인상만 기억되며 그 정보도 조각조각 파편화 되어 있다.

또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왜곡되거나 조작되기도 하고, 함축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No Comment시리즈에서 카메라의 셔터가 열려있는 노출 시간 동안 시간은

멈추거나 끊어진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으며,

이미지에 노출된 인물들과 사물들은 지속된 시간 위에서 매듭처럼 얽히고 설켜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된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했던 것들과 상관없이 시간을 축적하고, 빛을 축적하며 쌓아 나간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시간의 퇴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미지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셔터는 닫혀야 했고, 이미지 속의 시간은 멈춰야 했다.

퇴적된 이미지는 무한 반복되는 시간의 영역 속에 갇혀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멈춰진 시간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퇴적된 시간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은 텍스트에게 주어졌다.

텍스트는 퇴적된 이미지와 상관없는 것으로 정해질 때도 있고,

이미지로는 담을 수 없는 소리와 냄새에 대한 기억이 함께 담겨질 때도 있으며,

시간이 지난 뒤에 붙여질 때도 있어 나의 기억이 왜곡되어 정해지기도 한다.

 

No Comment시리즈를 통해 Comment하는 것은 작품 안에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 속에 관객의 시선과 감상이 작품의 액자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출발하여 개개인의 다양한 생각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홍상민, #SangMinHong